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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합니다/탐구내용

일본과 관련된 영토 분쟁지역 현황


일본의 영토 분쟁 지역은 남쿠릴 열도, 댜오위다오, 독도가 대표적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쓰시마 섬(대마도), 오키노토리시마 등 5곳이나 됩니다.

 

남쿠릴 열도 (러시아와 분쟁)

1855년 러일 통상 조약 체결 당시 아이누 민족의 우루프 섬 이북 지역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에도 막부와 러시아 제국 양 측이 해당 조약을 체결했었을 즈음에는 당시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구나시리(쿠나시르), 에토로후(이투루프) 등 4개의 섬을 일본령으로, 이북의 쿠릴 열도는 러시아령으로 하였고, 왓카나이 이북의 사할린 지역은 러일 공동 관리 구역으로 하였습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체결 당시 쿠릴 열도와 사할린 섬의 맞교환이 이루어질 때에는 쿠릴 열도는 일본의 색이 짙어서 일본 땅을, 사할린은 러시아 본토와도 연결고리를 이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러시아령을 두게 되었습니다. 30년이 지난 1905년 포츠머스 조약 체결 당시 사할린 남부를 일본령으로 설정되었고 1918년에는 북사할린이 일본에 의해 7년간 불법 점거되다가 러시아 공산군에 의해 퇴거되어 1905년 당시가 아닌 1910년 한반도 강점 당시 수준으로 회귀되었고,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군이 연합군에 의해 패배하여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국이 되면서 러시아가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쿠릴 열도를 침공하였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당시 일본의 청구권 제외 지역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하보마이, 시코탄, 구나시리, 에토로후 등 4개의 섬을 北方四島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 섬은 러시아가 관리하고 있지만 아직도 유령급 섬에 불과합니다.

 

댜오위다오 (중국과 대만과 분쟁)

댜오위다오(日 센카쿠 열도)의 경우 청나라 이전 시대까지는 중국령이었지만 청일 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하였던 것을 틈타 타이완의 부속 도서의 일원이었던 댜오위다오를 일본에 의해 강제 점거, 이후 센카쿠 열도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키나와가 美 신탁통치령 들어간 후, 1972년 오키나와의 일본 귀속 이후 현재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를 불법 점거한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로부터 돌려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다만 댜오위다오는 중일 갈등의 산물이자 동아시아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독도 (한국과 분쟁)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중국/몽골 이외의 다른 제삼국에서는 리앙쿠르 암초)의 경우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독도를 잘 볼 수 없는 섬이다. 울릉도의 부속 섬이다.」라는 근거가 있고, 안용복의 독도 도해 관계 문제, 한국의 과거 역사 자료 반영 문제, 내용 왜곡 및 불충분한 근거 자료 제시 등이 있어 한일 관계의 갈등이자 한반도의 뼈아픈 또 다른 충격이라는 최후의 근거가 있어 독도는 한국이 러시아식 실효 지배 강화 차원에 따라 울릉도에 기반시설 확충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오키노토리시마

오키노토리시마는 본래 이어도와 같은 암초로 되어 있으며, 이 섬은 인공섬이지만 일본이 불법으로 증축한 가짜 섬이기도 하며 섬에는 일본 최남단 표지석까지 세우는 것으로 보아 중국, 필리핀 등 주변 국가에서도 「일본의 오키노토리시마의 불법 점거를 묵인하고 있어. 논란이 거세지기도 한다. 이러다가는 해양 주권 침해로 애궂은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다.」는 근거가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다양한 나라와 영토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가 센카쿠 열도와 남 쿠릴열도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거부하면서 유독 독도에 대해서만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이고,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반증이거나 한국의 국력이 약하다고 무시하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